외고, 하버드, 스탠포드. 그러나 그들의 문장은 엘리트의 문법을 따르지 않는다. 소설가 구하비는 위태로운 문장으로, 더욱 위태로운 인물을 담아냈다. 그래서 그들의 궤적은 직선이 아니라 굴곡으로 남는다. 불나방처럼.
윤지우 기자
February 1, 2025
2021년, 유학생 구본무씨는 아시아계 학생들의 권익을 위해 하버드 교내 곳곳에 어퍼미티브 액션을 반대하는 대자보를 게시했다. 능력주의를 비판하는 마이클 센델 교수를 비판했다. 당시 하버드대는 어퍼미티브 액션 소송의 당사자였다. 교수님들의 따가운 눈총을 피하기 위해 그는 하버드(Harvard)의 음차(音借)인 하비(Harvey)를 필명으로 택했다. 비판하는 대상의 이름을 차용하는, 조금은 소심하다고 할 수 있는 풍자적 선언이었다. 이후로 그는 그 필명으로 계속 글을 쓰고 있다. 지난 크리스마스, 그는 <루나누나>라는 제목으로 테라·루나 권도형 대표의 성공과 몰락을 소설로 각색해 출간했다.
이스트뉴스룸 먼저 두 번째 소설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뉴스를 보니 저번 달 권도형씨가 미국으로 송환되어 재판을 받게 된다고 하더군요. 이 타이밍에 맞춰서 출간하신 것까지, 전부 작가님의 큰 그림이신가요?
구하비 감사합니다. 사실 타이밍은 한참 빗나갔어요. <루나누나>는 2022년에 완성했던 원고입니다. 당시에는 내용적으로나 시기적으로나 만족스럽지 않아서 절판했다가 이번에 다시 출간하게 됐어요. 저도 당연히 세속적 욕망을 가진 인간인지라 권도형 대표의 재판 타이밍과 맞아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는데, 실제 재판은 내년부터 시작이라고 합니다. 책을 조금 더 숙성시켰다가 본격적인 홍보는 그때부터 할까 싶습니다.
이스트뉴스룸 단도직입적으로 여쭤보겠습니다. 한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적으로도 권도형씨를 곱게 바라보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아요. 그런데 작가님의 글은 마치 그와 사랑에 빠진 듯한 인상을 주시는데요. 자신이 그려낸 캐릭터에 대한 애정인가요? 아니면, 다소 불편한 질문이지만, 아이비리그 출신 엘리트들만의 유대감 때문인가요?
구하비 하하, 아뇨 절대로 아닙니다.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에서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사기꾼 조던 벨포트를 매력적으로 묘사했다고 해서, 그가 사기꾼을 옹호한다고 비판받지는 않잖아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 역시 권도형 대표의 실패가 많은 분들께 고통을 안겨드렸다고 생각하고, 지탄합니다. 사실 저도 루나코인을 샀다가 한 달치 월급을 날렸고요.
그렇지만 작가로서는 캐릭터와 사랑에 빠져야합니다. 필수적이죠. 필연적이고요. 그리고 권 대표에게는 분명히 그만한 매력과 실력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이뤄내고, 또 무너뜨린 것들을 봤을 때 그가 전형적인 ‘아이비리그 엘리트 유학생’ 정도로 규정되기에는 너무나 뛰어나고 입체적 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스트뉴스룸 어떤 점에서 권 대표가 그렇게 뛰어나고 입체적이라고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구하비 내가 이 방에 있는 사람들 중 가장 뛰어난 사람인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어디를 가든 "예스"여야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게 어느 회사의 회의실이든, 어느 대학의 강의실이든. 그 답을 지키기 위해 움직이는 것이 야망의 시작입니다.
권 대표는 원래부터 천재 개발자 캐릭터가 아니었습니다. 대원외고 시절에는 토론대회 챔피언이었고 꿈은 변호사였어요. 전형적인 대한민국의 문과 엘리트였죠. 그런데 스탠포드에서 컴퓨터공학을 공부하고, 복잡한 알고리즘으로 작동하는 테라・루나를 만들때는 이과 엘리트였어요. 문·이과 같은 분류는 손쉽게 초월하는 카멜레온적인 능력과 야망이죠.
공부나 일 그 자체가 너무 재미있어서? 절대 아닙니다. 내가 이 방에 있는 사람들 중 가장 뛰어난 사람인가? 그에 대한 답이 바뀌어서는 안되니까요. 대원외고든, 스탠포드든, 실리콘밸리든. 그런 야망을 가진 사람은 위태롭죠. 매력적이고.
이스트뉴스룸 그렇다면 권도형이란 캐릭터에게는 돈보다 야망이 더 중요한 요소였을까요?
구하비 그의 끝이 어떻게 되었든, 저는 그를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창업한 캐릭터로 그리지는 않았습니다. 돈을 벌려는 창업자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팔죠. 여름에는 아이스크림을 팔고, 겨울에는 군고구마를 팝니다.
하지만 자신의 신념을 제품화해 파는 창업자들은 조금 다릅니다. 그들은 세상을 바꿀 수 있을지, 자신의 신념이 옳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제품을 만듭니다. 사람들이 당장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는 별로 관심이 없어요. 왜냐하면 사람들은 눈으로 직접 보기 전까지 자신이 뭘 원하는지 모르니까요.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만들기 전, 사람들은 스마트폰이 자신에게 필요한지 몰랐죠. 하지만 지금은 우리에게 얼마나 필요한가요? 너무 필요해서 문제가 되버렸죠.
권 대표의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은 비록 실패했지만, 신념이 깃든 제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스테이블코인—특히 테더처럼 달러를 담보로 하는 방식이 아닌, 테라처럼 알고리즘 기반으로 설계된 스테이블코인이야말로 블록체인의 레종데트르(raison d’être·존재의 이유)를 가장 잘 구현한 제품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실패했지만요.
이스트뉴스룸 하지만 작가님, “물론 실패했지만요”가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아닐까요?
구하비 그 지적에 동의합니다. 다만, <미생>에서 장그래가 신사업 아이템을 제안할 때 이런 말을 하죠. 자신이 밝혀낸 비리로 중단된 사업을 다시 추진하자며, “비리를 걷어내면 매력적인 사업입니다. 아직 우리의 일이 덜 끝난 것 같습니다”라고.
스테이블코인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테라·루나는 영원히 암호화폐 역사의 한 페이지에 남을 파멸적인 발명품이었어요. 하지만 이 실패와 비리를 걷어내면 스테이블코인은 여전히 암호화폐의 미래라고 생각합니다.
이스트뉴스룸 흥미롭네요. 그럼 다시 코인에서 창업자 이야기로 돌아와서, 권도형 씨 같은 캐릭터가 좋은 창업자라고 생각하시나요?
구하비 하하, 아뇨. VC들에게는 절대 아닐겁니다. 하지만 소설가에게는 좋은 창업자죠.
권 대표가 “세상을 더 이롭게 하기 위해” 코인을 만들었다고 설파하던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관심조차 없었을겁니다. 세상을 더 이롭게 하려면 사업가가 아니라 신부님이 됐어야죠. 저는 언제나 위선보다는 위악이 훨씬 다원적이고 입체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스트뉴스룸 이 부분은 아마 작가님이 지속적으로 언급하신 ‘아시안적이고 한국적인 야망’이라는 키워드와도 연결되는 것 같네요.
구하비 정확히 보셨습니다. 애석하게도 서양에서 소비되는 아시아 문화는 대개 두 가지 범주로 한정됩니다. 서구 사회가 기대하는 동양적 판타지를 충족시키거나, 지극히 일상적이고 단조로워서 서양의 문화적 우위를 위협하지 않는 선에서 끝나는 이야기들이죠. 그리고 그에 맞춰 아시아인은 거의 언제나 평면적이고 순종적인 캐릭터로 그려집니다. 그래서 저는 한 번쯤은 "자신의 뿌리를 두고 내적 갈등을 겪는 이민자 가정의 온순한 아시아인"이 아니라,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가장 뛰어났고 "주눅 들기는커녕 자신의 야망으로 인해 파멸을 불러온 아시아인" 캐릭터를 그려내보고 싶었습니다.
이스트뉴스룸 그렇다면, ‘아시안’이라는 정체성에 대한 논의의 연장선에서, 작가님이 하버드 재학 중 어퍼머티브 액션을 반대하는 대자보를 써붙이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또, 그 유명한 마이클 샌델 교수님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기도 하셨다고요.
구하비 네, 맞습니다. 이제는 대자보를 써붙였던 그 시절처럼 불타오르지는 않지만, 더 이상 불타오르지 않기에 말할 수 있는 것들도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저는 하버드가 고의적으로 아시안 학생들을 차별해서 입학 당시 점수를 낮게 줬다고 주장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피츠시먼스 입학처장님이나, 센델 교수님 같은 분들의 입장에서 ‘대학’이라는 기관의 레종데트르는 “어떻게 다원적인 캠퍼스를 구성할 것인가”에 맞추어져 있어요. 프란츠 파농의 구절을 빌리자면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자신만은 특별하다고 상상하는 이 나르시시즘을 끝내라는 겁니다.” 하지만 그건 개인을 함몰시키는 일이예요. 다양한 피부색이 있어도 다양한 사상이 없다면, 그게 다양성이 존재하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스트뉴스룸 그렇다면 작가님의 대자보는 그 나르시시즘을 어느 정도 옹호하는 입장이었을 수도 있겠네요.
구하비 아뇨, 저희가 원하는 건 나르시시즘보다 좀 더 정직한 거죠: 기회.
결국 대학의 본질이 포스트-어드미션(Post-admission)에 있는가, 프리-어드미션(Pre-admission)에 있는가 하는 철학적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대학이 특정 계층의 학생을 졸업시켜 사회의 균형추를 인위적으로라도 조정하는 기관으로 작동할 것인가, 아니면 대학이 특정 학생을 입학시켜 노력에 상응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사회적 메시지를 형성하는 기관으로 작동할 것인가—이 두 관점의 충돌이죠. 샌델 교수님은 전자시고, 저는 후자죠.
사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할 말이 너무 많고, 동시에 너무 정리가 안되어 있네요 (웃음). 굳이 정리하자면, 세상을 이해할 때 '구조'가 아니라 '개인'에 집중해야 하는 순간도 많다—정도로 정리하려고 합니다. 이번 소설 <루나누나>도 같은 맥락에서 출발했습니다. 루나 대폭락 사태를 다룬 이야기들은 거의 전부 “금융당국의 규제 공백” 혹은 “청년들의 코인 투기 광풍” 같이 구조적으로 이해하고 설명하려고 하죠. 저는 탁월한 한 개인의 야망이 초래한 결과라는 입장에서 글을 적어나갔습니다.
이스트뉴스룸 그렇게 하버드 대자보 이후로 현재까지 꾸준히 글을 써오셨고, 이제 두 번째 소설을 출간하셨어요. 스스로의 작품 활동을 어떻게 돌아보시나요? 앞으로도 계속 소설을 쓰실 계획인가요?
구하비 음, 사실 저는 이번 소설을 탈고하면서 텍스트의 시대는 점점 더 끝이 다가온다고 느꼈어요. 슬픈 현실에 직면해야겠죠. 모두가 책을 쓰고 아무도 책을 읽지 않는 시대이기도 하고요.
저번 주 토요일에 광화문 교보문고를 방문했는데, 다행히 제 첫 번째 소설은 아직 'J2평대: 한국소설 베스트셀러' 코너에 남아있긴 하더라고요. 아마 많은 독자분들이 책 제목을 보고, 희망을 북돋아주는 하버드 합격 수기에 가까운 내용을 예상하셨을 거예요. 하지만 소설의 실제 내용은 <수레바퀴 아래서>보다 더 현실적이고, 가혹하고, 디스토피아적이죠.
비단 책뿐만 아니라, 세상의 많은 것들이 기호적으로 소비되다보니, 문장을 한땀한땀 써 내려가는 일이 시대착오적인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도 자주 들어 조금 힘이 부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그래서 더욱, 저는 여전히 언어를 직조해 나갈(do language) 생각입니다.
이스트뉴스룸 아하, 작가님의 모토가 또 “I do language”시니. 혹시 소설이 아니라면, 어떤 다른 형태로 언어를 만들어갈 계획이신가요?
구하비 부끄럽네요, 하하. 감사합니다. 지금은 직장에서 LLM 관련 업무를 하고 있어요. 아마 기자님도 자주 사용하시는 챗GPT의 기반이 되는게 LLM입니다. 이런 AI의 발전을 직접 목격하고, 사용하고, 또 만들어보면서, 제가 공부해왔던 인지언어학—즉, 언어가 인간의 사고를 어떻게 형성하는가에 대한 개념이 완전히 뒤바뀌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걸 실감하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조지 레이코프 교수님의 근황도 찾아봤어요. "코끼리는 생각하지 말라"고 가르치시던 것처럼, 만약 우리가 AI를 같은 방식으로 학습시킨다면, 과연 AI가 코끼리를 떠오를 만큼 발전할 날이 올까? 하는 생각도 해봤고요. 교수님은 프레임랩(framelab)이라는 연구소를 통해서, 여전히 세상을 움직이는 언어에 대해 가르치고, 쓰고 계시더라고요.
세상을 아는 것은 더 이상 문제가 아니다. 변혁시키는 것이 문제다.
이 글귀를 품고, 아직 방향이 선명하지 않더라도 계속 언어를 찾아 헤맬 생각입니다.